월별 글 목록: 2015년 5월월

다중인격

몇 달 전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여러편 겹쳐 방송되면서 화두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 무렵쯤이었을까? 영화 소셜포비아를 보고 나서 다중인격이 자연스레 연상되었던 것 같다. 익명성을 앞세운 온라인상에서 인스턴트 소통이 정점에 달하며 자아에서 도덕성을 결여시킨 인격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나는 어떠한가 잠시 생각해봤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나, 회사에서의 나, 가족 앞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 SNS에서의 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모두 같은듯 다르다. 환경의 성질에 따라 그 안에서의 말투, 표정, 마음가짐, 노출하는 개인정보의 양도 미묘하게 다른 것 같다.

그 괴리가 점점 커져 전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스스로 통제, 인식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다중인격’이라는 병리적 현상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닐까?

커뮤니케이션의 미학

까탈스러운 사람과 상대하기를 좋아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어려운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 등장하는 비서 양재화(길해연 분)의 화법은 왕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 날카로운 충고를 하는 신하의 그것과 닮아있다. 선하거나 정의로운 캐릭터는 아니지만 소통에 유연하며 센스가 넘친다. 같은 일을 처리하더라도 굉장히 유연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기분나쁘거나 불편하지 않게, 상처받거나 어렵다고 느끼지 않도록 ‘받아들이기 좋게’ 말하는 사람.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사회적 지위와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았을 때, 한국사회에서는 이들을 무르게 보는 경향이 있다. 속이 없어서 져주는 것이 아니라, 포용할 줄 아는 것은 아닐까? 기분이 언짢을만한 말을 들었을 때 쉽게 발끈하여 공격적이 되는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없고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먼저 막말을 던지는 사람은 하수일 뿐이다. 하수와 똑같이 대응하면 사실관계는 온데간데 없고 소모적인 감정 싸움만이 남게 된다.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최종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승리인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않은 소통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감정을 철저하게 다스릴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므로 결코 쉽지않은 일이다.

배려와 매너는 사람을 품위있게 만든다. 실력있고 소신 있되, 너그러운 사람이 되자.